* 본 리뷰는 동인 에로게 'katawa shoujo(한국어 번역 : 장애소녀)'의 공략 캐릭터, 이케자와 하나코 루트를 포함해 장애소녀라는 게임에 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한국어판 패치는 팀 KS에서 제작한 한글패치입니다. 



하나코는 나한테 있어 특별한 캐릭터다. 장애소녀가 배포를 시작할 당시엔 영어과 일어, 그리고 베타테스트때 번역에 참여한 국가의 언어로만 나왔었는데 그 이전부터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릴리즈를 기다렸고 참다못해 그냥 영어버전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 패기(?)를 시전한 것이다.


각 루트에 들어서면, 특히 하나코의 경우 선택지가 적은 갯수지만 act 1. 의 분기점이 워낙 많아서 결국 그 당시에 act 1. 공략을 보고 나서야 + 되먹지도 못한 영어실력으로 공략을 시작한 것이 하나코였고, 기적이 일어났다. 수능 당시 4등급이었던 영어로 하나코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한 번에. 하나코 루트가 분기가 적긴 하지만 이것만 해도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물론 속독이야 못하지만, 천천히 한 문단씩 곱씹어서 집중하면 하나코 루트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처음 캐릭터 소개를 봤을 때부터 어딘가 마음이 쓰이던 연약한 느낌의 캐릭터. 하지만 연약하지만은 않은 소녀. 반신 화상과 그로 인한 PTSD를 겪는다 할 지라도 그녀는 연약하지만은 않다. 한글패치가 나오고 난 후에 다시 만난 하나코. 수 많은 내 자캐 중에서 한 캐릭터의 결정적인 모티프로 기억하는 캐릭터. 이케자와 하나코 루트의 리뷰를 시작할까 한다.



1. 하나코(華子)

꽃 화, 아이 자. 일본어 이름에서 자가 붙는 것은, 그렇게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작중에서는 하나코의 부모님은 하나코를 낳고 꽃과 같은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는 설정일 것이다. 다만 하나코는 그렇게 자랄 수 없었고, 어린 나이에 화재사건으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하나코 자신도 그 때 간신히 살아난다. 반신 화상을 입고.


반신 화상은 이후에도 하나코에서 지속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고아원으로 갔을 때도, 그 화상 때문에 아무도 하나코를 입양하려고 하지 않은 채 하나코는 야마쿠 고교로 진학하게 된다. 아직도 그 때의 상처가 남아있는 하나코에게 잔인할 수 있는 처사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나코 역시 고아원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하나코 또한 그들을 좋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꽃과 같이 자랐어야 하는 소녀가 끔찍한 꽃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새겨넣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상처를 보듬어줄, 같이 바라봐 줄 이가 나타난다. 주인공 나카이 히사오다.



2. 상처

하나코 루트에서 상처는 하나코 자신 뿐만 아니라 히사오의 상처도 부각된다. 워낙 큰 범위라 숨길래야 숨기기도 어려운 하나코의 화상 상흔과 살리기 위한 수술을 위해 가슴을 가른 히사오의 상처. 상처로 인해 받은 트라우마, 다시는 평범해질 수 없는 질병 때문에 스스로에게 낸 정신적인 상처. 그 상처로 인해 히사오는 무미건조한 캐릭터로, 하나코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캐릭터가 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릴리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코에게 필요한 친구였다. 릴리는 상흔을 볼 수 없으니 하나코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릴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서로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의 장애가 누군가에게 상처 한 꺼풀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요소가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그 이상 하나코는 내딛지 못한다. 하나코의 상흔을 볼 수 있는 이들은 그 상처에 놀라고, 첫 만남 당시 히사오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하나코 루트에서 상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던 것이 있었다. 어쩌면 히사오도 플레이어인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히사오는 그저 가릴 수 있었을 뿐인 거라고. 하나코의 상처 범위가 크던 작던 뭐 어쨌던 결국 둘 다 몸에 난 상처가 있고, 장애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누군가 우위에 있는 관계도 아니다. 


장애소녀라는 제목을 봤을 때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애인이니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시선들, 소재부터 정신나간 것 아니냐고 매도하던 의견들에 대해 제작진이 스트레이트로 답을 내놓은 루트가 하나코 루트라고 생각한다.



3. 자존감

하나코는 루트 내내 자존감이 낮은 캐릭터이다. 애초에 장애를 얻게 된 원인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릴리와 지낼 때는 찾기 힘들었던 자존감을 히사오와 다니면서 서서히 찾기 시작한다. 히사오와 편의점 쇼핑을 하고, 릴리와 아키라까지 넷이서 바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고, 노천카페에서 히사오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종래에는 릴리와 히사오 없이 혼자 시내에 나올 수 있게 된다.


거창하게 말하면 히사오는 하나코에게 있어 구원자격인 캐릭터지만 그렇다고 히사오가 하나코를 감싸돌기만 한 것도 아니다. 되려 히사오 또한 하나코와 다니면서 자신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고, 릴리와의 대화에서 친구로써 두 사람이 하나코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장애에 대한 트라우마가 한없이 낮은 자존감을 가진 하나코가 스스로 그 껍질을 깨부수고 나오려는데, 그걸 어쩌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이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씬 이후에도, 하나코는 혼란스러워한다. 그 낮은 자존감이 발목을 끝까지 잡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히사오가 떠나지 않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던 일말의 불안감. 오히려 히사오는 그런 하나코의 말에 자신의 태도를 더 분명하게 하나코에게 밝힌다. 그런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한 사람이 동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이상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히사오는 하나코를 동정하지 않는다. 화상이니 뭐니 하는 건 진작 내던졌다. 그저, 히사오 앞에 있던 하나코는 화상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장애인 하나코가 아니라, 그런 쓸데없는 타이틀은 죄다 때려치운 이케자와 하나코라는 여자였다. 



4. Can you face your fears?

하나코 루트의 애니메이션은 린 루트 애니메이션에 비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홀로 내던져진 하나코를 히사오가 발견하는 내용이다. 다만 음악은 혼란스러웠다가, 진정됐다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혼란스럽게 변한다. 마치 하나코 안에 있던 트라우마를 절대 쉽게 해결하게 두지 않겠다! 하는 선전포고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하나코 루트에서 자신의 생일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하나코의 과정은 한없이 빛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 사고 이후 찾지 못했던 답을 찾아낸다. 그 곁에 릴리가 있고, 그리고 히사오가 있다.


마지막 CG에서 그 누구보다 빛났던 하나코이기 때문에 엔딩 이후가 제일 걱정되지 않는 캐릭터기도 하다. 히사오와 함께라면 하나코는 언젠가 앞머리로 가린 흉터로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야마쿠 고교를 벗어나서 또 다시 스스로를 가둔 껍질을 스스로 깨트릴 것이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히로인이 또 있을까. 


실제로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플레이 했을 당시에도 하나코 루트가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그 이후에도 게임 몇 개를 더 해봤지만 하나코 루트 이상의 감흥을 받은 루트가 없었다. 그만큼 하나코는 내 안에 깊숙하게 남아있다. 그 때 처음 공략했던 히로인이 하나코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