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에 쓰인 인칭은 더빙판을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 워낙 오래 전 나온 작품이다보니 그냥 대놓고 스포일러 막 내지르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BGM IS Der Nussknacker Blumenwalzer(호두까기 인형 2막 2장 4악장, 꽃의 왈츠

[번역에 따라 '꽃의 요정의 춤'이라고도 한다. 같은 곡이다.])


시작하며, 

2002년 8월 방영된 애니를 2016년에 보는 기분은 묘하다. 14년 전 애니다보니 기술력이야 당연히 눈을 낮춰야 하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스토리텔링'이 지금 시대에도 먹히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린세스 츄츄는 그게 먹힌 애니였다. 솔직히 지금 양산형으로 나오는 이세계 라이트노벨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걸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스탭롤에는 분명 등장인물 대다수가 히라가나지만 아무리 봐도 애들 보라고 만든 애니메이션은 아닌, 2002년 작품 프린세스 츄츄의 리뷰.




1. 한 남자가 죽었습니다.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남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가 만드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것을 알게 되고, 귀족도, 부자도 모두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써주기를 그 남자에게 부탁했다.

그 남자는 그들을 위한 이야기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내 그 남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양 팔을 도끼로 내려쳐 잘라내었다.

그 남자는 얼마 후 죽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이야기는 죽고 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현실과 이야기가 뒤섞이기 시작해, 어느새 구분이 없어졌다.


프린세스 츄츄의 무대는 뱀이 교복을 입고 발레 수업을 듣던지, 개미햩기가 이족보행을 하면서 발레 수업을 듣던지(넌 왜?!), 염소가 선생님으로 있다던지 하는 이상한 세계이다. 1화에서 아오리가 이상하게 느끼다가도 이내 수긍하는 것은, 아오리 또한 그 남자, 드롯셀마이어가 만든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파키아의 능력이 각성하면서, 또 그의 숨겨진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 애니는 결코 애들 보라고 만든 애니가 아니게 된다. 이 얘기는 조금 더 뒤에서 하고.


액자식 구성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드롯셀마이어는 이야기의 창조자이자 지배자로 군림함과 동시에 그 등장인물인 아오리, 파키아, 루는 드롯셀마이어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심지어 이야기의 창조자임을 알게 되는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이다. 반대로 드롯셀마이어 또한 창조자이기 때문에 <프린세스 츄츄>가 있는 세계관에 개입하기도 한다. 제 4의 벽을 마구잡이로 뛰어넘기는 전개는 일반적인 동화의 전개와는 사뭇 다르다. 드롯셀마이어는 분명 <프린세스 츄츄>가, 아오리가 있는 세계에서 죽은 지 오래된 인물인데, 정작 드롯셀마이어는 팔도 멀쩡하고 잘만 개입한다. 굳이 표현한다면 제 4의 벽을 마구잡이로 넘어드는 3개의 액자식 구성이다. (동화책 <왕자와 까마귀> - 왕자와 까마귀에 나오는 프린세스 츄츄가 실존하는 세계(주 무대, 이하 '츄츄의 세계'로 명칭을 통일.) - 드롯셀마이어 시점의 세계)


옛날에 분명 죽었다던 드롯셀마이어는 어떻게 프린세스 츄츄가 있는 세계 바깥에서 창조자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의 존재는 프린세스 츄츄라는 이야기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동화를 모티브로 한 세계관은 뻔하게 흘러가지 않고, 때때로 변칙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2. 프린세스 츄츄

아오리가 변신할 수 있는 백조, 아 그러니까 진짜 백조는 아니고 프리마돈나. 하지만 <프린세스 츄츄>의 이야기 속에서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았던 배역. 평범한 오리였던 아오리가 드롯셀마이어에게 선택당해 입혀진 '희망'. 그리고 그 힘으로 마음을 잃어버린 왕자를 구할 수 있는 공주.


1부 <알의 장>에서 프린세스 츄츄는 왕자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배역이지만, 2부 <아기 오리의 장>에서 프린세스 츄츄는 스스로의 힘에 무력함을 느끼기 일쑤이다. 1부가 일반적인 동화에서 주인공이 겪는 고난 정도라고 치면, 2부에서는 그 깊이가 바닥을 뚫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프린세스 츄츄라는 배역이 왜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았던 배역인 게 점점 드러나는데


1. 프린세스 츄츄는 왕자에게 말로(말이다. 다른 건 괜찮다.) 사랑한다 고백할 수 없다. 고백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2. 프린세스 츄츄는 왕자를 행복하게 해줄 뿐, 츄츄와 왕자가 같이 행복해진다는 결말이 없다.

3. 프린세스 츄츄로 선택되어 받은 펜던트는 왕자의 마음 파편 중 마지막 하나로, 돌려주게 되면 인간으로도 변할 수 없다.


야 진짜 변태적이다. 드롯셀마이어 진짜 변태적일세.


왕자만을 바라보고 숭고히 희생한 프린세스의 끝은 다시 오리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동화 속에서 얼마 비중도 되지 않았던 오리는 최선을 다해 프린세스 츄츄로써의 임무를 수행한다. 더 이상 인간으로 변신할 수 없게 되고, 오리로 돌아온 뒤에도 말이다.



3. 알의 장, 아기 오리의 장

1화부터 13화까지는 알의 장, 14화부터 26화까지는 아기 오리의 장으로 따로 분류가 되어 있는데, 원안을 쓴 스태프는 10년 전부터 알의 장을 구상해왔었다 한다. 그걸 보고 13화까지 쭉 달리면 자잘한 고증오류(?)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알의 장의 완성도가 높은 편인데, 14화부터 그 자잘한 고증오류들이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전개가 된다. 깔끔하게 모든 떡밥을 회수해서 풀어나가는 것이 아기 오리의 장인데, 여기서 주연 4인의 위치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야기를 뒤틀어버림으로써 왕자를 지키는 기사의 역할을 해야만 하던 파키아가 드롯셀마이어의 후손인 것이 밝혀지며 '츄츄의 세계'의 엔딩을 쓸 수 있는 이야기 속 작가로 변하고, 프린세스 클레르였던 루는 큰까마귀의 계략에 속아 넘어갔던 평범한 소녀였으며, 마음을 잃어버렸다 어느 정도 수복했는데 큰까마귀의 계략에 넘어가 적이 되버리는 뮤토까지. 아오리는 되려 이 넷 중에서 제일 변화가 덜한 거 같기도 하다. 파키아는 아오리에 대한 태도의 변화까지 감안해야 하니 이 녀석이 제일 포지션 변화가 큰 편인데, 드롯셀마이어의 뒤틀린 이야기를 이어나갈 작가 포지션까지 떠안았으니 제 후손이 그렇게까지 이야기 속에서 버둥거리며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는 드롯셀마이어의 당황함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창조주랍시고 행패(?) 부리는 건 역시 별로지만.



4. 동화, 그리고 발레

작품 자체가 별로 돈이 안 쓰였을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클래식 악곡들이 많이 쓰여서 꽤 돈 썼을 법한 애니이다. 각 화마다 부제가 붙어있는데, 클래식 계열을 잘 아는 이라면 곡의 제목을 유추해서 이 캐릭터는 이런 역할이구나, 이번 화는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 발레라는 춤이 우아하기로는 대명사이지만 이것도 집중이 됐다가 발레와는 접점이 없는 사람이 중간에 잘 집중해서 보다가 빵 터지는 자세가 가끔 나온다. 웃을 부분이 아닌데 갑자기 터져서 집중하기 좀 어려웠다.


무엇보다 츄츄는 변신을 해서 적을 물리친다가 아니라 변신을 해서 춤으로 정화시킨다는 개념이 좀 더 맞는 편이고, 그 이전에 변신도 애초에 큰 의미를 두기 힘들다. 특히 2쿨에 진입하면 되려 아오리에게 있어서 츄츄란 족쇄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다시 말하지만 드롯셀마이어는 핵변태다.


기존의 동화는 꼬아버리고, 발레는 되려 적절한 요소에 배치한 작품이라 발레덕후, 클래식덕후들에게 어필 꽤나 했지 않았을까 싶다. 난 정작 돌려보다가 중간부분 잠깐 스쳐지나간 거 보고 이거 뭐 이런 애니가 다 있어? 했었는데.... 1화부터 봤으면 안그랬을지도.



5. 간단히 말하자면, 서브커플이 주인공이 된 작품

이렇게 어려운 말들이 잔뜩 쓰여져 있지만 주인공은 끝내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 채 루와 뮤토를 이어주고 다시 오리로 돌아간다. 새드엔딩이라기도 그렇다고 해피엔딩이라고도 할 수 없는데, 엔딩까지 보고 난 뒤 난 이 애니를 설명 할 때 <드라마에 존재하는 서브커플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메인커플을 이어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해주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드롯셀마이어가 '츄츄의 세계' 세계관 안에 설정한 동화 <왕자와 까마귀>의 주인공은 뮤토와 츄츄가 됐어야 하지만 루가 츄츄의 역할을 대신했고, 왕자와 이어지는 것도 츄츄가 아니라 클레르이다. 츄츄는 <왕자와 까마귀> 내에서도 큰 비중이 없고 주인공도 아닌 데다가, 츄츄의 세계에서도 주인공이라고 하기 어렵다. 드롯셀마이어가 보는 시점, 즉 드롯셀마이어마저도 관찰자로 보는 애니메이션 <프린세스 츄츄>를 보는 시청자 시점까지 와서야 아오리 = 프린세스 츄츄는 주인공이 된다. 어렵게 쓴 거 같지만 이게 그나마 풀어 쓴 거라 어떻게 쉽게 줄일 수가 없다.


이쯤에서 파키아의 심정이 궁금해진다. 아무리 봐도 2쿨 돌입하고는 아오리를 의식 안할 래야 안할 수가 없는 시점이 되는데, 아오리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되려 크게 표현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 의식하던 아오리가 오리로 돌아갔을 때의 절망감은 분명 컸을텐데도, 25화의 묘사를 보면 이미 그 역시 드롯셀마이어의 이야기 내에서 그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드롯셀마이어가 쓰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를 자신이 이어나갈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인지 절망하지 않는다. 유리멘탈에서 강철멘탈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메인커플인 루와 뮤토는 다른 세계에 와서 깽판치고 지들만 행복하겠다고 지들만 잘 살겠다고 도망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 왜 거기서 나와서 아오리를 그 꼴로 만드냐ㅠㅠㅠㅠ



끝내며, 그리고 한 남자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루와 뮤토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고, 아오리도 프린세스 츄츄로써의 사명을 다한 채 다시 오리로 돌아갔지만 파키아만이 여전히 <프린세스 츄츄>가 현존하던 세계에 홀로 남게 된다. 드롯셀마이어의 후손으로써 사람들에게 저주와도 같았던 <이야기를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 또한 각성했고, 기사에서 작가로 바뀐 파키아는 자신의 선조인 드롯셀마이어와는 다른 희망이 넘치는 이야기를 막 시작한 것으로 프린세스 츄츄가 끝을 맺는다.


드롯셀마이어의 이야기에서, 파키아는 유일하게 남은 변수일 것이다. 하지만 드롯셀마이어자 죽고 피로 <프린세스 츄츄>의 이야기를 쓰던 기계는 그의 손에 박살나버렸고, 더 이상 드롯셀마이어는 자신의 피조물인 파키아를 막을 수 없게 되자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떠난다. 자신도 어느 누군가의 <피조물>은 아니었나 하는 말을 남긴 채.



주인공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한 채 돌아온, 어찌보면 가엾은 엔딩. 하지만 츄츄의 세계를 만든 드롯셀마이어는 사라졌고, 파키아가 남아 츄츄의 세계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암시를 남긴 엔딩이라 언젠가는 다시 프린세스 츄츄 = 아오리를 만나지 않았을까. 

* 본 리뷰는 동인 에로게 'katawa shoujo(한국어 번역 : 장애소녀)'의 공략 캐릭터, 이케자와 하나코 루트를 포함해 장애소녀라는 게임에 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한국어판 패치는 팀 KS에서 제작한 한글패치입니다. 



하나코는 나한테 있어 특별한 캐릭터다. 장애소녀가 배포를 시작할 당시엔 영어과 일어, 그리고 베타테스트때 번역에 참여한 국가의 언어로만 나왔었는데 그 이전부터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릴리즈를 기다렸고 참다못해 그냥 영어버전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 패기(?)를 시전한 것이다.


각 루트에 들어서면, 특히 하나코의 경우 선택지가 적은 갯수지만 act 1. 의 분기점이 워낙 많아서 결국 그 당시에 act 1. 공략을 보고 나서야 + 되먹지도 못한 영어실력으로 공략을 시작한 것이 하나코였고, 기적이 일어났다. 수능 당시 4등급이었던 영어로 하나코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한 번에. 하나코 루트가 분기가 적긴 하지만 이것만 해도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물론 속독이야 못하지만, 천천히 한 문단씩 곱씹어서 집중하면 하나코 루트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처음 캐릭터 소개를 봤을 때부터 어딘가 마음이 쓰이던 연약한 느낌의 캐릭터. 하지만 연약하지만은 않은 소녀. 반신 화상과 그로 인한 PTSD를 겪는다 할 지라도 그녀는 연약하지만은 않다. 한글패치가 나오고 난 후에 다시 만난 하나코. 수 많은 내 자캐 중에서 한 캐릭터의 결정적인 모티프로 기억하는 캐릭터. 이케자와 하나코 루트의 리뷰를 시작할까 한다.



1. 하나코(華子)

꽃 화, 아이 자. 일본어 이름에서 자가 붙는 것은, 그렇게 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작중에서는 하나코의 부모님은 하나코를 낳고 꽃과 같은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는 설정일 것이다. 다만 하나코는 그렇게 자랄 수 없었고, 어린 나이에 화재사건으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하나코 자신도 그 때 간신히 살아난다. 반신 화상을 입고.


반신 화상은 이후에도 하나코에서 지속적으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고아원으로 갔을 때도, 그 화상 때문에 아무도 하나코를 입양하려고 하지 않은 채 하나코는 야마쿠 고교로 진학하게 된다. 아직도 그 때의 상처가 남아있는 하나코에게 잔인할 수 있는 처사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나코 역시 고아원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하나코 또한 그들을 좋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꽃과 같이 자랐어야 하는 소녀가 끔찍한 꽃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새겨넣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상처를 보듬어줄, 같이 바라봐 줄 이가 나타난다. 주인공 나카이 히사오다.



2. 상처

하나코 루트에서 상처는 하나코 자신 뿐만 아니라 히사오의 상처도 부각된다. 워낙 큰 범위라 숨길래야 숨기기도 어려운 하나코의 화상 상흔과 살리기 위한 수술을 위해 가슴을 가른 히사오의 상처. 상처로 인해 받은 트라우마, 다시는 평범해질 수 없는 질병 때문에 스스로에게 낸 정신적인 상처. 그 상처로 인해 히사오는 무미건조한 캐릭터로, 하나코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캐릭터가 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릴리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코에게 필요한 친구였다. 릴리는 상흔을 볼 수 없으니 하나코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릴리를 편하게 대할 수 있다. 서로가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의 장애가 누군가에게 상처 한 꺼풀을 조심스럽게 벗겨내는 요소가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그 이상 하나코는 내딛지 못한다. 하나코의 상흔을 볼 수 있는 이들은 그 상처에 놀라고, 첫 만남 당시 히사오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하나코 루트에서 상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던 것이 있었다. 어쩌면 히사오도 플레이어인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히사오는 그저 가릴 수 있었을 뿐인 거라고. 하나코의 상처 범위가 크던 작던 뭐 어쨌던 결국 둘 다 몸에 난 상처가 있고, 장애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누군가 우위에 있는 관계도 아니다. 


장애소녀라는 제목을 봤을 때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애인이니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시선들, 소재부터 정신나간 것 아니냐고 매도하던 의견들에 대해 제작진이 스트레이트로 답을 내놓은 루트가 하나코 루트라고 생각한다.



3. 자존감

하나코는 루트 내내 자존감이 낮은 캐릭터이다. 애초에 장애를 얻게 된 원인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릴리와 지낼 때는 찾기 힘들었던 자존감을 히사오와 다니면서 서서히 찾기 시작한다. 히사오와 편의점 쇼핑을 하고, 릴리와 아키라까지 넷이서 바에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고, 노천카페에서 히사오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종래에는 릴리와 히사오 없이 혼자 시내에 나올 수 있게 된다.


거창하게 말하면 히사오는 하나코에게 있어 구원자격인 캐릭터지만 그렇다고 히사오가 하나코를 감싸돌기만 한 것도 아니다. 되려 히사오 또한 하나코와 다니면서 자신의 태도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고, 릴리와의 대화에서 친구로써 두 사람이 하나코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장애에 대한 트라우마가 한없이 낮은 자존감을 가진 하나코가 스스로 그 껍질을 깨부수고 나오려는데, 그걸 어쩌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이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씬 이후에도, 하나코는 혼란스러워한다. 그 낮은 자존감이 발목을 끝까지 잡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히사오가 떠나지 않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던 일말의 불안감. 오히려 히사오는 그런 하나코의 말에 자신의 태도를 더 분명하게 하나코에게 밝힌다. 그런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한 사람이 동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이상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히사오는 하나코를 동정하지 않는다. 화상이니 뭐니 하는 건 진작 내던졌다. 그저, 히사오 앞에 있던 하나코는 화상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장애인 하나코가 아니라, 그런 쓸데없는 타이틀은 죄다 때려치운 이케자와 하나코라는 여자였다. 



4. Can you face your fears?

하나코 루트의 애니메이션은 린 루트 애니메이션에 비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홀로 내던져진 하나코를 히사오가 발견하는 내용이다. 다만 음악은 혼란스러웠다가, 진정됐다가, 진정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혼란스럽게 변한다. 마치 하나코 안에 있던 트라우마를 절대 쉽게 해결하게 두지 않겠다! 하는 선전포고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하나코 루트에서 자신의 생일에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하나코의 과정은 한없이 빛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 사고 이후 찾지 못했던 답을 찾아낸다. 그 곁에 릴리가 있고, 그리고 히사오가 있다.


마지막 CG에서 그 누구보다 빛났던 하나코이기 때문에 엔딩 이후가 제일 걱정되지 않는 캐릭터기도 하다. 히사오와 함께라면 하나코는 언젠가 앞머리로 가린 흉터로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야마쿠 고교를 벗어나서 또 다시 스스로를 가둔 껍질을 스스로 깨트릴 것이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히로인이 또 있을까. 


실제로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플레이 했을 당시에도 하나코 루트가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그 이후에도 게임 몇 개를 더 해봤지만 하나코 루트 이상의 감흥을 받은 루트가 없었다. 그만큼 하나코는 내 안에 깊숙하게 남아있다. 그 때 처음 공략했던 히로인이 하나코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본 리뷰는 동인 에로게 'katawa shoujo(한국어 번역 : 장애소녀)'의 공략 캐릭터, 테즈카 린 루트를 포함해 장애소녀라는 게임에 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한국어판 패치는 팀 KS에서 제작한 한글패치입니다. 린 루트가 힘들다는 것을 익히 듣고 있어서 영어로만 나왔을 당시 플레이하지 못했습니다만, 드디어 한글패치가 나와서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글패치를 내주신 팀 KS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자고 얘를 장애소녀 리뷰의 첫 타자로 삼게 되었는지 스스로 이해를 못하겠다. 루트 자체가 이해력이 상당히 필요하고(그게 아무리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으로 플레이 하는 것일지라도), 또 린의 성격이 일반적인 전파계 캐릭터라고 볼 수 없는 특별함을 기조로 깔린 캐릭터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쓰는 중에도 린 루트에서 나왔던 린의 말들이 생각나서 골치가 아프다. 일반적인 시점에서, 린은 상당히 골치가 아픈 캐릭터다. 참 여러가지 의미로.


그럼에도 린 루트는 에로게 히로인이라기엔 믿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있다. 로맨스라고 본다면 로맨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처음에 린 루트로 진입한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로맨스라기 보다 말 그대로 테즈카 린을 플레이어 자신의 영역에서 이해하는 것에 바빠 되려 린이란 캐릭터에게 휘둘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루트를 플레이하면서 느낀 건 그랬다. 번역자분들도 린을 이해하면서 번역하셨을 지 의문이다. 얘 너무 난이도 높다. 린 루트 시나리오 작성한 원작자만이 린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분도 이해를 못하실지도 모른다. 참 난이도 높은 친구다.


이해를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머리가 아프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테즈카 린에 대한 얘기를 천천히 해보자 한다. 리뷰를 작성 중인 나 역시 린 루트는 굿엔딩만 본 상황이지만, 엔딩이 뭐건 간에 다시 한 번 린이란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플레이를 할 예정이다.



1. 테즈카(手塚)

손 수가 들어가는 성을 가진 린은, 정작 팔꿈치를 기준으로 팔이 없다. 설정 상 선천적인 장애가 원인이 되어 잘라낸 것이라는 설정이다. 애초에 장애라는 부분을 모에요소로 적용해 밀어붙이는 게임도 아니라 별 상관은 없다. 더구나 린 루트에서 린의 장애는 린 자신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냥 오렌지만 못 까먹을 뿐이지 멜빵바지도 입고, (위에 있는 이미지처럼)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으며, 발이나 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본적이자 린에게 있어 일상적인 행동이다. 주인공 나카이 히사오에게 린이 자신의 장애를 불편해해서 도움을 뻗은 것은 단 두 번, 화실에 찾아온 히사오가 린이 까지 못하는 오렌지 껍질을 까줄 때와 뒤에 언급할 장면 뿐이다. 자신의 장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것은 반신 화상과 그로 인한 피해장애를 얻은 하나코 루트밖에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하나코 루트는 우리가 상상했던 긍정적인 의미(?)의 '장애로 인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갈등이 펼쳐지는' 캐릭터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리뷰는 테즈카 린에 관한 이야기고, 린 루트는 딱히 별 상관이 없다. 정확히는, 린의 장애를 린 자신과 히사오는 상관없어 하고, 정작 린의 그림을 보러 온 이들이 그 사실에 주목할 뿐이다. 손이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니 같은 그런 진부한 질문들 말이다. 다행이 이 고양이를 닮은 소녀는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부정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의문이 든다. 그럼 대체 뭐가 이야기의 소잰데? 

바로 린이 습관처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인 그림이다.



2. 추상화

린은 추상화를 그리는 것에 재능이 있다. 추상화에 대해서 소견이 넓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인 (리뷰를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서)플레이어는 아, 천재구나 하고 히사오나 주위 사람들의 언급으로 이해하게 된다. 화실에서의 첫 만남 이후, 히사오는 린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그림에 대해서 별 재능이 없던 그 또한 린을 따라 미술부에 들게 되지만 그저 재능이 없다는 것을 확인만 했을 뿐 더 이상 미술부 동아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닿기 어려운 소녀에게 빨려들어간다.


린과 히사오의 대화는 일반인인 히사오와 그렇지 않은 린의 맞닿지 않는 파문처럼 엉뚱한 곳에 팡하고 부딪힐 때가 많다. 애초에 린은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이미지를 끌어내기 제일 적합한 것이 그림이라고 말하는 캐릭터다. 당연히 그림이 아닌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는 쉽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 그럼에도 히사오는 린을 '이해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해하는 과정은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다. 되려 갈등의 번복으로 인해 지쳤다가, 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골치가 아팠다가, 그럼에도 린을 놓을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히사오의 내면 묘사는 안쓰럽기 그지없다. 


다만 히사오는 린을 잘못 '이해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루트의 본격적인 갈등이 터진다.



3. 이름

린은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대로 자신이 멋대로 만든 틀에 박혀서 그림을 보게 된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린에게 있어서 히사오의 권유로 하게 된 전시전은 린 자신을 메마르고 소모하게 만드는 데에 아주 적합했다. 히사오 또한, 린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그게 에로게 히로인이라는 관점으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스스로 왜 그랬는지 자책하기도 한다. 작품을 준비할 때도, 아닐 때도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린은 히사오에게 화실에 가만히 앉아있어달라고 할 때도 있고, 혹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쫓아낼 때도 있다. 린을 이해할 수 없던 히사오는 거기서 말 그대로 뚜껑이 열린다.


그림이 더디게 진행되던 와중에 린에게 필요했던 자기파괴(원문은 Self-destruction)는 창작자에게 있어서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묘사된다. 잠을 걸러보기도 하고, 밥도 대충 챙겨먹기도 하고, 한 번도 피워보지 않던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며, 그 끝에는 첫 씬이 기다리고 있지만 에로스적인 느낌은 전혀 없이 슬프기만 하다. 이미 고백을 했다가 차인 히사오가 린의 자기파괴의 마지막 단계를 도와주려 내민 손은 남녀의 그것이라기보다, 손이 없는 린을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기파괴가 성공적이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린의 그림은 린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을 묘사한 것이다. 심지어 린도 그걸 그리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안 붙이는 것도 있지만, 못 붙이는 것도 있는 것이다. 전시회가 성공적이건 어쩌건 애초에 그건 린에게 있어 관심 밖의 일이었고, 그림 좀 볼 줄 안다는 갤러리들이 작가인 린에게 묻는 질문들은 일반적인 화가라면 모를까, 린에겐 하등 도움도 되지 않고 설명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자신도 모르는 내면을 그대로 그린 것인데 그걸 뭘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4. Can you seize the day?

히사오가 린의 내면을 살짝 엿본 것을 시작으로 린이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고 마음을 다잡는 과정은 다른 의미로 에로게의 의미에 맞다고 생각한다. 대다수가 어른인 플레이어도 린을 따라가기 벅찬데, 그 미만의 연령대는 아예 이해도 하지 못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린 루트는 야한 장면을 제외하고도 어른인 플레이어를 상정하고 엮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고, 린과 히사오의 맞닿지 않는 파문은 끝내 맞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새드 엔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맞닿지 않을 뿐, 뒤돌아보면 겹쳐질 때도 있다가, 흩어지기도 하다가 하기 때문이다.


에미 루트를 제외하고 모든 캐릭터 루트를 봤지만, 린 루트의 히사오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루트는 없는 것 같다. 린을 잡을 수는 없지만, 린이 필요한 거리를 히사오는 알고 있다. 그것을 존중하면서도 린을 사랑한다. 자기멋대로인 면도, 자신의 재능을 굳이 돈을 벌려고 쓰는 것도 아닌 면도, 갑작스레 찾아와서 머리 좀 말려달라고 하는 엉뚱한 면도, 전부 다. 린이 처음 그려준 우울한 자신이 담긴 스케치로 인해 히사오는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그간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린'을 보게 되었으니까.


일반인의 관점으로 보면 대단한 재능을 썩히는 비효율적인 애라고 비난하겠지만, 린에게 그런 얘기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린은 일반인이 아니고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자신이 보이는 것에 조금의 변화가 있을지언정 린은 또 다시 붓을 들것이다. 린의 그림에 있어 누군가의 인정이란 고려대상이 아니다.



5. 민들레

엔딩에서야 린 루트 돌입 시에 나오던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을 느끼는 대로 그리는 린, 하지만 캔버스 속 '린'은 네가 그리는 그림이 맞냐고 물어보듯 고개를 갸웃한다. 내면에 잠든 린을 깨우는 민들레 꽃씨. 히사오가 순간이지만 린의 안에 들어왔다가, 린이 눈을 뜨자 그대로 사라져버린다.


왜 민들레가 나오나 했더니 두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장치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민들레는 히사오가 린 자신도 모르는 내면을 접촉할 수 있게 해준 장치였고, 그걸 계기로 히사오는 린과 친구 이상의 관계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흩날리는 꽃씨 속, 히사오는 감히 린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듣게 된다. 린을 따라가기 벅찼던 이들은 린의 변화에 되려 벙찔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린이란 캐릭터가 할 것이라고 생각치도 못한 말을 내뱉으니까.


정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멋대로 튕겨대는, 로맨스로는 꽝이면서 매력적인 히로인이었다. 

* 본 리뷰는 현재 방영중인 시즌 2 포켓몬스터 XY&Z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기본적으로 시즌 1 포켓몬스터 XY에 관한 총집편적인 리뷰입니다.

* 시즌 1 분량이 끝난 입장에서 모든 내용을 스포일러 하고 있습니다. 원작인 포켓몬스터 X/Y를 플레이 해보셨다면 리뷰 내용에 이해가 편하실겁니다.

* 본 리뷰는 존대, 존칭이 모두 생략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캐릭터명은 한국어명 기준입니다.

* 스킨의 변경으로 인해 첫번째 이미지가 변경되었습니다. (20160130)



BGM : 포켓몬스터 XY&Z 오프닝 <XY&Z> Full Ver.

노래 : 한지우(마츠모토 리카)



1997년 4월, 일본에서 포켓몬스터라는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원작은 1996년에 발매된 포켓몬스터 적/녹이라는 게임보이 소프트. 인간 쪽 주연인 레드를 애니메이션 설정에 맞춰 한지우(사토시)라는 캐릭터로 재창조시켰으며(그렇기 때문에 지우와 레드는 전혀 다른 캐릭터이다. 요즘도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애초에 애니메이션이 게임 설정을 리부트해서 재창조 된 세계다.) 97년에 시작된 여행은 올해로 19년차를 맞았다. (원작인 게임은 올해로 20주년) 여전히 지우는 10살이고, 피카츄 또한 같이 다니고 있다. 총 다섯 군데의 지방을 같이 여행했던 파트너는(관동, 성도, 호연, 신오, 하나) 6번째 지방인 칼로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의 여행은...



[추억은 추억에 묻어두고]

난 무인편이 SBS에서 짤린 이후로 제대로 포켓몬스터 애니를 본 적이 없다. 아마 그 때 즈음 우리집에 케이블이 놓이고 해서 투니버스나 재능TV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한 탓인 거 같은데, 자라면서 점점 볼 시간도 없어졌고 볼 이유도 찾지 않았다. 원작인 게임이 있었다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XY가 방영을 시작하면서, 미리 공개된 PV를 보고 한 번 봐볼까? 했던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보던 것이 벌써 XY&Z로 돌입하고, 방영햇수로 3년차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선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서 내뿜어 댈 수 있는 그야말로 갈려나가는 퀄리티로 지금은 성인이 된 시청자 입장에서도 만족하고 보고 있다. 고프프리 1화, 39화가 아동용을 뛰어넘었던 작화파티였다면 XY에선 체육관전, 특히 시트론전인 67화가 그러하다. 여러분 돈지랄이 최곱니다 돈지랄하세요.



<67화 시트론전 중 '일부'. 이외의 부분에 대해선 밑에서 다시 설명하도록 한다.>



[모험을 떠나자, 다시 한 번 더.]


<지우 일행의 경로. 게임과는 약간 다르게 각색이 들어가있다. 현재 위치는 XY&Z 기준.>


현재 지우 일행은 1화에서 관동-칼로스행 비행기를 타고 미르시티에 온 걸 빼면 원작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단, 게임에서는 조아마을이 칼로스지방 최남단에 위치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선 미르시티가 중심지기 때문에 백단시티로 잠깐 내려갔다가 간 정도) 리뷰를 쓰는 시점에서는 8번째 체육관인 이설시티를 향해 가는 중이고, XY는 7번째 체육관인 향전시티에서 종료되었다.


원작을 플레이 해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플레이 분량은 약 30시간쯤 된다. 지우는 이 30시간을 리얼타임으로 딱 2년을 채우고(XY) 마지막 체육관과 리그를 향해 가는 중이다. 요컨대, 게이머 입장에선 예전에 진작 플레이를 다 한 게임을 애니메이션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중간중간 오리지널 요소가 섞여있다고 해도, 기본적인 세계관을 무시하는 수준이 아닌 정도로.


이전에 방영된 애니메이션도 이런 식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은 이걸 극단적으로 늘려 진행하는 구조고, 무엇보다 게임에선 여섯마리의 포켓몬과 홀로 여행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선 지우와 세레나, 유리카와 시트론이 일행으로 같이 떠나고 있다. 각자의 꿈도 다르고 개별적인 에피소드도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딜레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질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촘촘하게 배치해서 보는 이들로 인해 지겹지 않게 한 것이 장점이다. 무인편의 경우 예상치 못한 인기로 인해 4쿨 내로 끝났어야 할 분량을 어거지로 늘리는 방법을 썼지만, XY는 그럴 필요가 없다. 어떻게 보면 빡빡하다고도 볼 수 있으나, 제작진이 그만큼 각본에 신경쓰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쓰잘데기 없이 버릴 에피소드는 진작 쳐내고 온전히 스토리를 진행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 팍 들어가있는 요소들]

세레나, 시트론, 유리카는 게임에도 등장하지만, 게임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캐릭터성을 들고 나온다.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요소인 <트라이 포카론>을 꿈으로 잡은, 꾸미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10살 소녀 세레나와 패셔너블한, 늘씬한 장신 소녀인 게임의 세레나는 분명히 다르다.

그렇기에 세레나는 세레나 자신만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설정을 가지고 있다. PV에 등장해 일약 포덕들을 파란에 몰아넣었던 지우와 어릴 적 만난 친구이자 세레나의 첫사랑이 지우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말은 다 했다고 볼 정도로.


하지만 세레나는 이 '첫사랑과의 만남'이라는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이후로 메인 에피소드에서 이래저래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정체성에 관해 흔들리는 에피소드가 메인이 되었다. 한동안 세레나 주역인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비주얼적으로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요소가 많아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같이 여행을 떠나는 신인 트레이너라는 오명도 썼지만, 제작진들이 오랜 기간 공들여 세레나가 여러가지를 체험하면서 끝내 포켓몬 퍼포머라는 꿈을 정하기까지 장장 40화의 분량을 소진하면서 만들게 된다. 


생각해보면, 보통의 사람은 세레나와 같이 이것저것 체험하면서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찾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신 그 과정이 장기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거의 1년을 썼다는 게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불만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후에 세레나가 메인이 되는 에피소드는 뚜렷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에피소드를 주로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레나가 정하지 못한 꿈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 태도를 바뀐 화는 지우와는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포켓비전을 만드는 화였다.



<포켓몬스터 XY 40화 중>

지우 : 있지, 이 캠프에서 하는 것들이 배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세레나 : 어제 낚시대회도, 오늘 포켓비전도?

지우 : 물론,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어. 

지금까지 모험 전부가 칼로스 리그 우승으로 이어질거야. 그러니까 더 힘내야지.

세레나 : 지우 넌 항상 힘내고 있어, 충분히.

지우 : 아냐, 아직 멀었어. 이정도로는 꿈을 이룰 수 없어.

세레나 : 무슨 꿈?

지우 : 포켓몬 마스터가 되는 거지.

세레나 : 그래? 역시 대단하네, 지우는.

지우 : 응?

세레나 : 아, 아냐! 수건 다시 갈아줄게. 꿈, 제대로 가지고 있구나.

지우 : 갑자기 왜 그래?

세레나 :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꿈은 뭘까 하고 가끔씩 생각해.

지우 : 잘됐네! 조급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면...

세레나 : 푸호꼬...

지우 : 푸호꼬가 너랑 같이 꿈을 찾아주겠다는데?

세레나 : 포켓몬과 함께 찾는 꿈...



시트론은 지우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가 변하고 싶어 지우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공돌이 속성은 유지하고 있지만, 게임에서와 다르게 거의 매 화마다 박살나는 게 일상이다가도 전기샤워라는 시스템을 10살 이전에 만들어 낸 천재소년의 요소도 갖추고 있다. 유리카는 단순한 조연이었지만 오빠의 포켓몬인 데덴네를 키프하고 있다는 설정에, XY&Z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니짱'과 함께 여행 중이다.


그런 시트론과 지우가 붙는 시점도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시트론 본인이 5번째 체육관이라는, 스토리에서 딱 절반의 위치에 존재하는 체육관의 관장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체육관 동료들은 아예 초반에 다 몰아서 붙어버리거나, 아이리스와 같이 아예 붙지 않는 전개로 갔으나 이 또한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에서 처음 시도되는 시도였다. 그리고 제작진은 그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 이상의 퀄리티로 보답했다. 67화 한 화에 쓰인 원화는 무려 1만장 이상. 그리고 잠시 이탈했다가 돌아온 시트론은 지우에게 최고의 전략으로 상대하며, 지우 또한 일행인 시트론과의 체육관전에서 자신과 했던 약속대로 시트론과 붙게 되어 전력으로 상대하게 된다.




<위부터, 67화 / 58화 아래는 67화 / 93화(XY 마지막화)

표현적인 부분에 있어서 나눈 것이지 별 의미는 없다. 열도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대체 어디로 가는가.>



지우는 언제나 그렇듯 리그전에서의 우승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 설정은 무인편에서도 그랬고 다른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진 20년째 여행 중인 캐릭터에게 신선함을 바라는 것은 힘들다. 대신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추가된 레귤러진에게 참신한 요소들을 붙여 기존의 매너리즘을 타파하는 시도를 했다. 참고로 지우에게 무리하게 신선함을 붙이려고 했다가 망했던 게 바로 전작인 BW다.



[사람도, 포켓몬도 모두 주인공인 세계]

저번 리뷰처럼 역시나 정신나간 조합으로 크로스 리뷰로 쓰고 싶었지만 무산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고프프리는 꿈을 지키는 소녀들의 세계지만, 포켓몬은 그게 아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포켓몬이 매 화 주연급 비중을 받는다. (그게 사람보다 비중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애초에 레귤러 주연진에 지우와 피카츄 둘 다 들어가있고 포켓몬 중 처음으로 피카츄어로 제목까지 소개한 화가 있었다(XY&Z 7화) 그만큼 피카츄의 위치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곳에 존재하고 있다. 지우의 주인공 하차 논란이 있는 와중에도 쉽사리 논란의 끝이 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지우의 피카츄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칙적인 귀여움을 만들어낸 작화진과 피카츄의 성우 오오타니 이쿠에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XY에서 피카츄의 비중은 주연급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공감하는 소재를 내놓아야 하는 제작진 입장에서 너무 많은 분량을 피카츄에게 할애를 하긴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피카츄가 주역이 된 에피소드는 꽤 되는 편이고 무인편의 그 피카츄를 생각하면 피카츄의 지금 위치는 굉장히 주동적인 포지션에 자리하고 있다. 



[무난한 스토리라인... 으로 끝날 거 같냐!!]

이렇게 촘촘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음에도 XY의 단점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바로 촘촘하기는 한데 확 몰입하고 볼 이유가 없는 애니메이션만의 스토리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원작인 XY와는 차별점이 없다라는 것인데, 자잘한 부근에서 촘촘하기는 하지만 메인 스토리 내에서 확 끌어당길만한 요소가 없던 탓이었다. 


일단 XY는 이게 부족하다는 문제를 안고 끝났다. 일단은. 그렇다고 해서 저평가 될 애니도 아닐 뿐더러, 아예 대놓고 XY&Z에서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스토리에 대한 떡밥을 어마어마하게 살포하며 끝나서 XY만 보고 하차하기도 어렵게 만들어놨다. 



<드디어 알랭이 본편에 등장, 지우와 맞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에 포덕들이 어떤 반응이었는지, 상상이 가는가?>



메가리자몽 X(알랭), 메가나무킹(승태), 그리고 지우 개굴닌자(지우)

플레어단 스토리에 본격적으로 끼어들 수밖에 없게 된 지우 일행, 그리고 푸니짱.

아직 붙지 못한 8번째 체육관 관장, 우르프와 그가 있는 이설시티.


이 모든 것들이, 후속작 XY&Z로 넘어갔다.



XY는 이제 본편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 본 글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데 어째서인가 둘 다 땡겨서 열심히 봐버린 GAROGo! 프 리큐의 통합리뷰입니다. 두 작품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계실 지도 몰라 최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한다고 썼지만 모르기 때문에(...) 여하튼 용썼습니다. 네... 그래도 필요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인용했으니 감안하시며 봐주시길 바랍니다.

* 크로스, 라고 썼습니다만 일종의 병렬적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두 매체를 비교하고자 쓰는 리뷰는 아닙니다. 

* GARO 시리즈라고 언급했습니다만, 실제로는 코우가가 주인공인 작품(하단에서 언급) 위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시리즈 자체가 성인물이니 나중에 보실 때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당연하지만, 리뷰 내용 중엔 그와 관련된 내용은 그다지 없습니다.

* 편하게 존칭은 생략, 존대 또한 생략합니다.

* 이후 이 두 시리즈에 대한 리뷰는 각자 또 올릴 예정입니다. 아니 프로젝트 크로스 존 2은 언제 올릴건데요

* 지속적으로 수정 중입니다. 여러모로 간만에 정성쏟은 글이라 그런가 손이 많이 가네요. 현재 최종수정 버전은 160117입니다.



<부제 : 이런 정신나간 크로스 후기를 실제로 해버리고야 말았습니다ㅋㅋㅋㅋㅋ>

고프프리, 혹은 가로 쪽만 파시는 덕후분들께는 심심한 양해를 미... 미리 좀 구합니다. OTL



GARO(이하 가로)와 Go! 프린세스 프리큐어(이하 고프프리)는 변신물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전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가로는 성인향의 특촬물이고, 고프프리는 여아용의 애니메이션물이다. 주 대상이 되는 연령층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르고, 하여간 위에 쓴 '변신물'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아무런 것도 없다. 하다못해 성우가 겹치냐면 그것도 아니다. 스탭진 중에도 그 누구도 겹치지 않는 두 작품. 그럼에도 나는 이 전혀 다른 두 매체를 재미있게 봤고, 겉으로만 봐선 도대체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이 두 매체에 대해 같이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공통점이라고 없는 작품들의 간단한 소개]

GARO에서 사에지마 코우가는, 정확히 말해서 작품이 시작되기 전까지 두루뭉술하게 '호러들을 사냥한다'는 신념 하에 마계기사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1화에서 미즈키 카오루를 만나고, 호러의 피에 뒤집어씌였음에도 어째서인가 (외전 소설에서, 카오루는 이미 이 때 코우가한테 반해 있던 상황이었다) 미끼로 써야 한다며 살려놓게 된다. 이 예외가, 코우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들의 장대한 시작. 그리고 카오루와 엮이며 그의 '의무'또한 구체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1화에서의 그 무뚝뚝을 넘어선 상식결여.... 일지.... 음... 하여간 그걸 생각해보면 매 화 발전해가는 커뮤니케이션이랄까.



<이런 최악의 첫 만남인데도 반했다는 카오루. 하지만 이게 '첫 만남'은 아니다.>



Go! 프린세스 프리큐어에서 하루노 하루카는, 어린 시절 보았던 꽃의 프린세스라는 동화책을 읽고 그러한 공주님이 되고 싶었다. 짖궂은 장난에 울고 있던 어린 하루카를 달래준 것은 호프 킹덤의 왕자, 카나타. 만남의 선물로 하루카는 드레스 업 키를 받게 되었고 그것이 하루카의 꿈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 명문 학교 노블 학원에 입학한 것을 계기로, 학생회장 카이도 미나미, 탑 모델 아마노가와 키라라와 만나 프린세스의 꿈을 꾸는 것이 스토리의 시작이다. 

하루카는 매체 특성상 코우가처럼 무뚝뚝하거나 그런 타입은 아니다. 밝고 상냥하지만, 아직 다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 초반에 키라라와 미나미와 다니면서, 노블 학원 내에서 실제로 하루카가 듣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꽃봉오리가 아름답고 강하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그 과정이 고프프리의 주제 중 하나이다. 익숙한 이들에겐 진부한 플룻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글쎄. 작품은 실제로 보는 쪽이 도움이 될 것이다.



<본편 내에서 기술 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쓰인 등장 CG Ver. 큐어 플로라.

그 이후에 등장한 어떤 프리큐어도 3D 모델링으로 데뷔씬을 찍지 않았다. (물론 극상의 2D로 나오긴 했다) 전력을 다한 토에이는 무섭다.>



미리 써두었지만, 정말 이 둘은 공통점이라고 찾아보기 더럽게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할 얘기가 많지만.



['인간'과 인간의 '꿈']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두 작품군 다 변신하는 히어로물.... 이다. 그렇다. 히어로물인 거 말고 딱히 공통점은 없다. 왜냐면 시선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1기 1화의 코우가의 상태와 고프프리 1화의 하루카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한 쪽은 스스로의 인간성을 억지로 짓누르는 상황이고, 한 쪽은 동경하던 프린세스가 되어 기뻐도 모자랄 판이다. 냉탕과 온탕급 차이다. 


그럼에도, 이 어마어마한 온도차가 있는 두 작품에서 각 주인공들은 변화를 겪는다. 시선이 움직이고, 생각이 바뀐다. 그 계기는 한 사람, 그리고 여러가지의 꿈들. 극도로 인간성을 억눌러온 사람은 한 사람을 만나 느릿하지만 분명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를 겪고, 여러가지의 꿈을 보고 지켜온 이는 스스로의 꿈에 대해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이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변한다.


이렇게 변해가는 와중에 각자의 방법으로 문제에 봉착한다. 화수로만 적자면 고프프리 38화, 가로 1기 17화. 자세히 적자면 '꿈을 지키는 전사 프리큐어의 꿈은 대체 누가 지켜줘야 하는가'인 것과, '호러사냥과 인간을 구하는 것의 우선순위'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답을 내린 것은...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39화 중(2분 10초부터)>


클로즈 : 그러나 꿈은 또다시 너를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다!

큐어 플로라 : 그래도 상관없어!! 스스로 정한 꿈인걸!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전부 받아들여서...

나는 프린세스가 될 거야!!!


그리고 같이 나오는 가사는 다음과 같다.


멈춰서고서 알아챈 나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바뀌고서) 그리고 전부 극복하고 싶어

여러분 이게 일요일 아침에 하는 여아용 애니메이션 퀄리티입니다(...)


카나타 : 분명 나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일거야.

하루카, 네가 웃을 수 있도록 나는 너의 꿈을 지켜주고 싶어.

대놓고_커플플래그_세우시는_왕자님.jpg 

애초에 이름도 하루카 카나타(일본어로 '머나먼(하루카, 遙)' '곳에(카나타, 彼方)'라는 관용구)고.



고프프리에서는 단순히 지키는 자의 포지션인 프리큐어의 꿈을 다른 이가 '지킨다'는 뜻을 내비친다. 또한 하루카는 스스로 정한 꿈에 대해 한 점 후회도 하지 않은 채 걸어나간다. 그러한 꿈을 지키려는 자의 꿈은, 또 다른 꿈을 지키려는 자를 만들어내어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는 것. 아마 고프프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이것이 아닌가 싶다.

분명 앞서서 누군가의 꿈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존재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싸우는 존재가 꿈이 없다는 건, 모순이 된다. 그 모순을 깨트리는 존재는, 바로 그 싸우는 존재로 인해 보호받는 존재다. 아니, 애초에 그런 구분 자체가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누구든 지키는 자가 될 수 있고, 누구든 보호받는 자가 될 수 있으니. (그리고 난 이 화 후반에서 정말 최루탄이라도 맞은 것마냥 울었다.)


유치해보일 수 있던 하루카의 꿈 또한 47화에서 다시 한 번 명백하게 밝혀진다. 애초에 하루카는,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하루노 하루카의 꿈은, 강하고 상냥하고 아름답다면 그 누구라도 프린세스라 말하고 있었다.>





코우가 쪽은 '갈등''에 대한 결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게 된다. 17화부터 20화까지 말 그대로 급박하게 돌아가기 때문인데 본인이 자초한 결과로 인해 카오루와의 관계가 타인 그 미만 수준으로까지 멀어진 상태에서 주변의 상황이 급변한다. 그야말로 태풍의 눈에 진입하고 나서야, 그녀를 구하러 마계기사 홀로는 통상적으로 갈 수 없는 그렌의 숲에 발을 들여 바란카스의 열매를 지닌 파수꾼과 대면하게 된다.



<이러한 말들은, 코우가 내면에 있는 진심어린 답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코우가는 이 대화를 통해 분명 변했음을 시청자들에게 인식시킨다. 1화와 이 때(20화)를 비교하면, 확실히 사에지마 코우가는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스로 제거했다고 믿었을 테지만, 솔직히 1화에서 구해줬을 때부터 내색하지 않았더라도 이 쪽도 반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변화는 느긋하게 1기를 정주행하면 눈에 보이니,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어떤 리뷰를 보고 나도 긍정한 파트인데, 코우가는 그 기점으로 카오루에게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 공통점이라고는 찾기 힘든 두 작품에서, 여주인공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원인이 남주인공 쪽에 있는 데다 심지어 의도치 않았다는 것마저 같은 씁쓸한 공통점이 있다. 이런 거는 왜 공통점이냐고... 


카나타는 하루카가 다치는 모습을 보고 '프리큐어가 어째서 스스로의 꿈은 돌보지도 않은 채 타인의 꿈에 대한 맹목적인 보호를 해야 하는가'라며 하루카가 싸우는 의미를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당시 카나타의 상황도 상황이었던지라 카나타만에게 화살을 돌릴 수만은 없는 전개였다.

코우가는 그렇게까지 틀어진 것 자체가 본인이 자초한 점도 어느정도 있는 데인데다 그게 실수라는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마 스스로는 그 당시에 제일 적합하면서 둘러 댈 변명을 댄 것일 지도 모르지만. 말을 너무 아끼면 이렇게 됩니다, 같은 느낌이었을까. 17화에서 20화로 오면서 1화부터 17화까지의 두 사람의 변화보다 더 급진적으로(그렇다고 엄청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이전 화들에 비해서)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다행히 둘 다 잘 해결되기는 했지만, 이거 해결 안됐으면 그 시점에서 가로던 고프프리던 방영 끝! 수준이었다.



['인연'과 '운명의 부정']

일단 겉으로 보이기에, 제일 크게 보이는 두 작품의 중심적인 문구들은 바로 위에 쓴 대로 [인간]과 [인간이 갖는 꿈]이다. 하지만 조금 더 파고들어보면 가로에서는 인간의 여러가지 인연, 그 중에서도 사랑에 관한 얘기가 은연중에 자주 나오는 편이다. 애초에 1기만 해도 좁게 보면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가 동료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걸 쓰면서 안 거지만 코우가던 카오루던 단 한 번도 자기 입으로 좋아한다니 사랑한다니 한 적이 없다. 니들 이래도 괜찮은거냐.

이는 외전과 2기에서도 주요하게 다루어지며, 백야의 마수에서는 어릴 적 코우가의 기억 한 편에 자리잡고 있던 어머니의 사랑을, 2기에서는 코우가가 더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어가며 넓어지는 관계에 대해 보여준다.


고프프리에서는 꿈이라고 간결하게 규정했지만, 원래의 목적은 인간의 삶은 운명을 부정하고 극복해나가는 것이라고 타나카 유타 프로듀서가 밝힌 적이 있다. 그것이 정리된 것이 바로 '꿈'이라는 단어였다고. 하루카는 카나타가 만들어 준 꿈을 카나타만을 위한 꿈이 아닌 자신의 꿈으로 개척해나가며, 미나미는 카이도 재벌의 영애가 아닌 수의사로써의 꿈을, 키라라는 흔들리던 꿈을 다시금 붙잡아 나아가고, 토와는 저주스러웠던 트와일라잇의 운명을 부정하지만 그 죄를 끌어안고 세 사람을 만나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간다.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은 흔한 히어로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키는 자로써의 고뇌와 꿈에 대해서 주제를 설정했다. 그럼에도 그 진부한 주제로 견고한 팬층을 만든 것은 지속적으로 캐릭터 하나하나의 분량에 신경쓴 것과(리뷰엔 하루카 위주로 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에선 네 사람 전부에게 비중이 골고루 분배가 되어있는 편이다.) 각 프린세스들에게 맞는 속성이 온전히 잘 녹아나있는 전투씬, 무엇보다 주 시청층인 아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효과적인 연출로, 그야말로 '공주님'에 맞게 보여준 점일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을, 바다의 생명력을, 별의 빛남을, 화염의 화려함을 갖춘 공주님들은 매 화 자신들이 주역이 될 때마다 그에 맞는 강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 그리고 히어로]

아무래도 매체의 특성이 다르다보니 성별에 따라 주어지는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코우가를 비롯한 마계기사는 전부 남자고(차별스럽지만 이에 대해 원감독 코멘트, 여자가 갑옷을 입으면 옷태가 살지 않는다고... 솔직히 그 부분은 공감한다.), 카오루는 지켜지는 자이다. 하루카, 미나미, 키라라, 토와는 남여공학인 노블 학원에서 프리큐어로 선택된 '여학생'들이다.(토와는 호프 킹덤의 공주지만) 카나타 왕자는 프리큐어라는 직위를 다른 세계의 여자아이들에게 맡긴 것을 미안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전력으로 서포트한다. 카나타 왕자라는 캐릭터 또한, 프리큐어 시리즈에서 의외다 싶을 정도의 이레귤러적인 캐릭터였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이런 사과도 없었으니까.


카오루는 호러의 피를 뒤집어쓰고, 정화되었음에도 호러와 엮인다. 지켜지는 자이자 수동적인 포지션일 수밖에 없는 카오루는 이렇게 엮이지 않으면 가로 내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제일 중요한 부분에서 큰 힘이 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카나타 왕자는 호프 킹덤에 남아 혼자 싸우고 있었단 설정이 존재하지만, 기억을 잃고 헤매는 동안 가로의 카오루의 포지션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이후에 멋지게 복귀를 한 이후에도 호프 킹덤에 홀로 돌아가 싸운다. 아쉽게도 프리큐어 진영과 겹치는 일이 드무니 잘 보이진 않게 되는데, 오히려 이 부분은 단순히 남성 캐릭터인 카나타만이 아닌, 프리큐어가 아닌 일반인으로써 사건에 휘말리는 나나세 유이라는 캐릭터와 합쳐져야 카오루와 더 흡사한 캐릭터로써 성립된다. 실제로 카나타만 놓고 보는 것보다, 유이와 캐릭터성이 합쳐진다면 그게 카오루라고 해도 될 정도로의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유이는 동화작가를 꿈꾸고, 카오루는 이미 동화작가이지만 두 사람 다 프리큐어/황금기사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하니까. 이후에 카오루가 도움을 주는 부분은 유이라기 보다 카나타 쪽에 더 가까우니, 확실히 더 그런 느낌이 든다.



<'나나세 유이'와 '미츠키 카오루'만이 그려나갈 수 있는 것. 그리고 세상에 전해 줄 수 있는 것.>



[파격과 안정 사이]

가로는 처음 계획되었을 당시 아동용 타겟의 1년 분량을 기획하였다가 좀 더 연령대가 높아진 쪽으로 변하며 분량 또한 2쿨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가면라이더 시리즈, 슈퍼전대 시리즈와는 다른 느낌으로 진행된다. 1화부터 벗은 여인의 나체가 그려진 그림이 나오고, 이후에도 시즌 1 마지막화, 시즌 2 첫 화에서도 꽤나 파격적인 노출이 등장한다. 노출도도 노출도인데 폭력성도 워낙 강하다. 아동용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야기의 진행도 통수와 통수의 연속.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언급은 물론이고 어느 파트의 짤을 떠야 할 지도 가늠이 안가, 어쩔 수 없이 비워두기로 했다.


고프프리는 처음에 프리큐어란 존재가 공주님이란 설정이 등장했을 때부터 팬들에게서 여러 의견이 나왔었다. 기존까지의 프리큐어는 여아용이라고 믿기 힘든 강렬한 육탄전이 기조였지, 흔히 볼 수 있는 여아물의 샤랄라한 공주님같은 것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그 파격적인 면모와 달리(이전에 볼 수 있었던 변신소녀물의 클리셰 중 하나였고 그와 안티테제적인 위치에 있던 프리큐어에 등장했다는 것이 독특했던 거였을 뿐이다) 정석적인 이야기로 흘러가게 된다. 이것이 완구 판매에 영향을 끼쳐 판매량이 나쁘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클로즈 얜 생긴 것도 그렇지만 캐릭터 자체의 위치도 계속 변화한다.>



[시간의 제한]

여기서 말하는 시간제한은 가로와 고프프리가 다른데, 가로는 기본적으로 변신시간의 타임 리밋인 99.9초도 있고, 살아있을 수 있는 기간으로 따지면 1기의 카오루, 2기의 코우가/레이를 비롯한 마계기사 전부를 말한다. 고프프리는 호프 킹덤이 구해지기까지의 시간. 두 작품 다 주인공들에 대한 위협을 미리 상정하고 시작한다. 그게 개인이 됐건, 나라가 됐건. 히어로물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만 이런 위기가 없다면 히어로는 존재할 가치를 잃는다. 


또한 고프프리에 있어 또 하나의 시간제한이라면 4쿨이라는 현실의 시간이다. 가로는 이후에 단독으로 극장판이 몇 편 제작되었고, TV시리즈에서 어정쩡한 엔딩을 냈던 걸 영화로 완벽하게 끝을 이어버릴 수 있지만, 고프프리는 이후 시리즈인 마법사 프리큐어! 에게 주역 자리를 넘겨줘야 하고, 시기가 시기인 이상 9월에 나오는 극장판은 본편 중간에 들어가는 엑스트라 스토리이며, 그 다음해 3월은 완전한 평행세계이자 고프프리의 주역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전체 프리큐어가 등장하는 영화다. 당연히 하루카, 미나미, 키라라, 토와의 미래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둘 다 미래에 관한 얘기는 아니기 때문에. 마치 카오루가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황금 기사의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백지인 상태와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로의 이야기도 완전히 끝을 맺었다긴 뭐하다. 여러가지 의미로.



<올해 레이 주연인 외전 나온다면서요. 그러면 얘네 썰 좀 풉시다 진짜, 응?>



[끝... 이려나?]

가로 시리즈의, 정확히 말해 코우가의 이야기에서 아쉬운 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카오루는 지켜지는 자이기 때문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공개 엔딩마저도 결국 타다이마 오카에리 엔딩이고... 마계기사의 조건이 여성은 안된다는 것도 좀 아쉽고. 설정 외의 이야기로는 나름 비스꾸리하게 공감은 하는데 음... 여하튼 아쉬울 수밖에 없다. 


고프프리는 이전 작인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의 파격으로 인한 흥행의 아쉬움을 타파하고자 좀 더 독특한 공주님 컨셉을 가지고 왔지만, 그게 프리큐어 내에서만 독특하고 이미 몇 번이고 우려먹힌 소재인데다 스토리마저 큰 굴곡없이 이어져 아쉽게 되었다. 리뷰를 쓰는 입장에서 스토리가 굴곡지지 않다라는 점이 단점이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힘들지만. 큰 굴곡이 없이 무난하게 잇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가로는 시즌마다 눈에 보이는 점이, 약 18화부터 마지막화까지의 각본 전개 속도가 꽤 빠른 편인 것. 그래도 어떻게 압축은 잘 되는 듯 하지만...


아쉬움만 적자고 쓰는 리뷰가 아니니 좋은 점도 적자면 이 두 시리즈의 찾기 힘든 공통점 중 하나이자 장점 중 하나가 CG이다. 미쳐날뛴다. 고프프리는 이미 애니메이션 업계 내 최강의 CG를 구사하는 회사이고(그리고 이어지는 세일러문의 악몽) 가로 시리즈는 05년, 11년에 방영한 TV시리즈물이라고 믿기 힘든 퀄리티를 보여줬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잡할 수는 있으나 10년, 5년 전에 방영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지금 이 리뷰에서 같이 다루는 고프프리는 아예 작년~올해의 작품이라 더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다시 언급하지만 가로 1기는 2005년, 고프프리는 2015년 작품이다. 1기가 방영할 시 프리큐어 시리즈는 첫번째 작품의 두번째 시즌인 <두 사람은 프리큐어 Max Heart>가 방영 중이었고 당시에 3D 모델링은 적용되지 않았다.



<토에이, 왜 세일러문과 드래곤볼은 그따위로 만들었지?!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3D 모델 퀄리티>


<고프프리 직전, 2014년에 방영되었던 4기 마계의 꽃 3D. 질 수 없다 인건가 이거...>



가로 시리즈는 프리큐어 시리즈와 달리 애니메이션, 모에파치(이걸로 회사 하나가 순식간에 네임드가 되었다고 하더라), 영화, 기존의 특촬물까지 정말 온갖 매체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당장 올해에 극장판 애니메이션 한 편이 확정되어 있고, 작년엔 특촬과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세계관이 계속 바뀌고 가로 시리즈 고유 설정은 유지되는 프리퀄인지라 특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좀 더 보기 편할 것이다. 3D가 미쳤다는데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첫 작 BD 판매량이 처참했다는 게 좀 슬프다만.


고프프리는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승진한 타나카 유타라는 디렉터의 첫 감독작이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면 고프프리를 비롯한 이전의 프리큐어 시리즈에서 극상의 작화미를 보여줬던 감독이다(대표적으로 두근두근 프리큐어에서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 40화의 마코토 라이브 씬 등). 물론 모든 화의 작화감독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나, 중요한 키포인트가 되는 화는 본인이 직접 담당했으며, 그런 화의 스토리, 작화, 연출은 할 말이 없을 정도. 39화가 방영된 당시에는 드래곤볼 슈퍼와 비교되어 이정도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원망섞인 후기도 올라왔었다. 여아용 애니메이션의 연출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에. 스토리가 왕도적이고 굴곡이 없어 심심할 수 있는 부분을 제일 먼저 보이는 작화로 커버한다. 기술을 쓰는 장면은 CG로 구현했지만 위화감이 거의 없을 정도로 토에이 3D 작화팀이 갈려나갔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정말 작화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작화 하나만 믿고 봐도 될 수 있을 수준.



각각 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GARO와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Go! 프린세스 프리큐어는 본편 50화로 챙겨보기만 하면 되고, GARO, 정확히 말해 코우가가 주인공인 시리즈는 1기- TV스페셜 백야의 마수 - 극장판 Red Requiem - 2기 - 창곡의 마룡/도환의 피리(창곡의 마룡 시점 스핀오프) 순으로 봐야 좀 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완전히 끝내는 엔딩의 경우 제일 마지막에 나온 극장판을 봐야 TV 시리즈로만 봤던 이들의 답답함을 확 날려줄 것이다. GARO에서 코우가의 이야기는 이미 3년 전에 끝났기 때문에 한 번에 몰아보기도 나쁘지 않다. 3기 이후로는 주인공이 다르며, 4기는 조금 관련이 있을지도...? Go! 프린세스 프리큐어는 이제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전까지 방영한 화들을 몰아보고 이후에 남은 에피소드를 즐기면 그만.


양 쪽 다 요즘에 흔한 짧게짧게 소화되는 작품군과는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 다소 긴 러닝타임에 질릴 수도 있겠지만, 취향이 맞는 이들이 좀 더 많이 즐길 수 있길 바라면서 리뷰를 마친다.

* 본 리뷰는 이 블로그에서 상당히 드물게도, <프로젝트 크로스 존 2>, 정확히는 아리스 레이지와 샤오무에 관한 내용'' 담고 있습니다.

* 본 리뷰는 프로젝트 크로스 존 2 엔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 <프로젝트 크로스 존 2> 게임 자체에 관한 리뷰는 이후에 새로운 글로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BGM은 프로젝트 크로스 존 2 엔딩곡. 


2회차까지 끝났다. 끝났다!!!!!!!!!!!! 시바 끝났다고 끝났어 으하아항하아하아하아하하하하하!!!(...)



아, 음음. 흥분을 가라앉히고. 남코 크로스 캡콤은 플레이 해본 적 없지만 이 작품의 두 주인공들은 알고 있다. 무한의 프론티어에서 게스트로 등장했기 때문인데, 레이지와 샤오무가 최애캐는 아닌 관계로(무한의 프론티어 내 최애캐는 카구야. 카구야쨔응!), 아니 이 둘이 주연으로 나오는 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기는 했다.


프로젝트 크로스 존 2는 그 뿌리가 꽤 복잡하다면 복잡한 게임이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각 게임사에 나오는 인기 캐릭터들이 슈퍼로봇대전같은 시스템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어디까지나 간단하게, 인거고 속을 들여다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슈퍼로봇대전마냥 거대한 타이틀대로 나온 게 아니라 계속 이름이 바뀌면서 나왔기 때문에. 일단 시작은 소소(?)하게 남코 크로스 캡콤이었고, 여기서 약간 갈라지게 된다. <크로스 엣지>라는 다분히 남성 플레이어들을 노린 거의 여캐들로 구성된 게임이 나왔고 <무한의 프론티어>라는 시리즈로 또 다르게 나왔기 때문이다.


발매 기기의 차이도 있지만 대부분이 여캐인 크로스 엣지와 달리, 무한의 프론티어는 아예 대놓고 '슈퍼로봇대전 OG를 계승했다'고 언급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플레이해보니 답이 나오더라. 주인공들의 이름에서부터(하켄 브로우닝, 난부 카구야) 그 연계성이 보이더니, W시리즈 중 하나인 W07 아셴 브레이델이 나오며 종결. 스즈카히메는 특이하게도 OG 시리즈 내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오리지널 캐릭터였으나 오히려 그게 묻힐 수 있던 캐릭터성에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심지어 후속작 EXCEED의 주인공들도 OG 세계관에서 의식한 듯한 이름들이었으니 뭐 말 다한 셈 아닌가.


여하튼 남코 크로스 캡콤이 데뷔작인 레이지와 샤오무는 무한의 프론티어에 등장하면서 내가 알게 된 캐릭터였고, '아, 옛날에 그런 게임에 등장했던 캐릭터구나'하고 아는 수준이었다. 무한의 프론티어 내에선 공격력은 강하지만 방어력이 휴지조각인 수준이라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기도 해서 아 그냥 키우지 말까 싶기도 했으나 그 공격력이 죄다 커버할 정도로. 물론 염장질도 거기서도 잘 하더라. (샤오무 독단적인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프로젝트 크로스 존으로 무대가 옮겨져 레이지와 샤오무가 살고 있던 세계가 메인이 되었으나 이 둘은 주인공이 되지 못했고, 이 곳 저 곳의 후기를 보면 세간의 평도 그다지 좋다고 하기는 힘들 수준인 듯 했다. 그렇게 남코 크로스 캡콤이, 레이지와 샤오무가 데뷔한 지 10년이 되는 해, <프로젝트 크로스 존 2 : 브레이브 뉴 월드>가 발매되었다.


닌텐도까지 가세한 희대의 미쳐날뛰는 4개의 회사가 콜라보한 이번 작품은 2회차까지 하는 내내 질리지도 않고 신나게 플레이 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 어느 경우의 수까지 계산하고 스크립트 짠 거야? 싶을 정도로 거의 왠간한 솔로 유닛 + 페어 유닛의 만담은 즐거울 정도였고, 이들이 모여 움직이는 이유도 명백했으며, 그 움직이는 편의성을 이번 작의 신 캐릭터인 우라시마 치즈루와 그녀가 끌고 다니는 용귀 1호가 등장하는 것으로 해결. 시나리오적인 부분도 같이 보완해 준 캐릭터인데다 신라의 의상을 파격적으로 어레인지 한(허벅지 옆 부분이 반 이상 보일 정도인[!]) 외형까지 왠간한 개성은 죽을 지도 모르는 이 게임에서 나름대로의 개성도 살아난 편이었다.


난 이 게임 내에 참전한 캐릭터들의 원작을 반 이상은 잘 모른다. 용과 같이의 경우 한글화가 된 적도 없고, 참전한다고 하길래 그제서야 위키를 뒤적여서 아 이런 게임의 이런 캐릭터구나 하고 알았을 정도니까. 다른 게임들도 대다수 그렇다. 그럼에도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서비스 개념인 이 게임을 서비스스럽지 않게 잘 포장해서 옛다 플레이어, 먹어봐라! 하고 내밀어 준 제작진 덕분일까. KOF로 따진다면 프로젝트 크로스 존은 94였고, 이번 2는 95 이후인 느낌인 거다. 독자적인 시나리오가 있다는 점은, 단순히 각 게임들의 외전격인 이 게임을 한 곳에 모아 플레이 할 수 있다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난 5월에 올라왔던 남코 크로스 캡콤 10주년을 축하하는 이미지. 

게임 컷인, 일러스트, 애니메이션PV 모두 통털어서 이 일러스트에서 레이지가 제일 잘생기게 나온 듯 하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구도와 안은 자세가 정반대일 뿐 남코 크로스 캡콤 엔딩의 그것이다.>



레이지와 샤오무는 그런 면에서 캐릭터성이 꽤 독특하다. 단순히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내와 765살 이후 나이 안 센 암여우란 점 말고, 독자적인 스토리가 있던 세계에 있던 적이 거의 없었던 점이다. 무한의 프론티어는 어디까지나 무한의 프론티어 내의 스토리가 있는 곳에서 참전한 것이라 본인들의 이야기가 있다기는 드물고, 크로스 엣지에는 참전하지 않았고, 프로젝트 크로스 존은 주인공이 아니었으며, 따지고 보면 남코 크로스 캡콤과 프로젝트 크로스 존 2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메인으로 담아낼 수 있던 게임들이라는 점이었다.


아마 이 둘이 참전하기로 결정된 이후에, 이미 제작진들은 이 둘을 메인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진행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과정에서 전작의 주인공들들이 약간(?) 희생되었으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나올 수는 없기도 하니 당연한 처사라면 처사이리라. 그래서 이번 결말이 마음에 든다. 완전히 빼박을 걸어버린 터라 과연 이 둘이 결혼하고도 프로젝트 크로스 존에 플레이어블로 등장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혼여행 개념으로 여행가다가 소환되거나 하지 않을까 싶다. 당사자들에게는 뜨거울 시기에 신라가 무슨 짓을 하는가 싶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레이지는 그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앨리스가 모티브라고 한다. (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과(이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번 작의 주 적들과 신라, 그리고 본인의 머리칼 등)가 섞인 이미지인데, 작은 금빛 여우와 여행하던 청년의 이야기는 화이트 래빗들과 마치 헤어들과의 전투에서 이기며 세계의 혼란을 잠재우고 서로의 시간이 같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니 그들만의 시간이 '계속' 되길 앞으로도 바란다. 

그러니까 행쇼해라. 꼭 해라. (주먹울음)


서비스로 올려보는 엔딩 대사. 필요한 부분(?)만 잘라봤다.

레이지는 이 색, 샤오무는 이 색

개인적으로 어색하다고 느낀 부분은 임의로 살짝 바꿨습니다. 그래봐야 티도 안나지만.





<그대와 그대의 계속이 같지 않는다 해도 어떠한가. 지금 당장 서로가 같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닌가.>



* 이 컷인이 컷인인고로 좋아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레이지의 망설임과 샤오무의 적극성이 대비되서 좋다. 조금 더 적극적인 느낌도 좋았겠지만... 개인적으로 2회차 엔딩에서 누군가 난입해서 다 같이 와아와아 고백했대? 우와 결혼한대??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막 왁자지껄했었길 바랬다. 이런 역에 왠지 마지마 형님이 어울릴 거 같지만 내 기대는 완벽히 배신당했다


+ 아무래도 게임 성향이 성향인고로 기대는 안했지만 조금은 로맨틱한 컷인도 기대했는데... 모노리스! 보고있습니까! 해외의 여자팬이 여기 있습니다! 이 게임 여자도 해요! 그러니까 다음 작은 양 쪽 다 노려봅시다! ㅠㅠㅠ



  1. 모르는 분들이 보면 좀 건방져보이거나 할 수 있으나 레이지의 말버릇입니다. 원문은 そいつは... 重畳 [본문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