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는 동인 에로게 'katawa shoujo(한국어 번역 : 장애소녀)'의 공략 캐릭터, 테즈카 린 루트를 포함해 장애소녀라는 게임에 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한국어판 패치는 팀 KS에서 제작한 한글패치입니다. 린 루트가 힘들다는 것을 익히 듣고 있어서 영어로만 나왔을 당시 플레이하지 못했습니다만, 드디어 한글패치가 나와서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글패치를 내주신 팀 KS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쩌자고 얘를 장애소녀 리뷰의 첫 타자로 삼게 되었는지 스스로 이해를 못하겠다. 루트 자체가 이해력이 상당히 필요하고(그게 아무리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으로 플레이 하는 것일지라도), 또 린의 성격이 일반적인 전파계 캐릭터라고 볼 수 없는 특별함을 기조로 깔린 캐릭터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쓰는 중에도 린 루트에서 나왔던 린의 말들이 생각나서 골치가 아프다. 일반적인 시점에서, 린은 상당히 골치가 아픈 캐릭터다. 참 여러가지 의미로.


그럼에도 린 루트는 에로게 히로인이라기엔 믿기 힘든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있다. 로맨스라고 본다면 로맨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처음에 린 루트로 진입한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로맨스라기 보다 말 그대로 테즈카 린을 플레이어 자신의 영역에서 이해하는 것에 바빠 되려 린이란 캐릭터에게 휘둘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루트를 플레이하면서 느낀 건 그랬다. 번역자분들도 린을 이해하면서 번역하셨을 지 의문이다. 얘 너무 난이도 높다. 린 루트 시나리오 작성한 원작자만이 린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분도 이해를 못하실지도 모른다. 참 난이도 높은 친구다.


이해를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머리가 아프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테즈카 린에 대한 얘기를 천천히 해보자 한다. 리뷰를 작성 중인 나 역시 린 루트는 굿엔딩만 본 상황이지만, 엔딩이 뭐건 간에 다시 한 번 린이란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플레이를 할 예정이다.



1. 테즈카(手塚)

손 수가 들어가는 성을 가진 린은, 정작 팔꿈치를 기준으로 팔이 없다. 설정 상 선천적인 장애가 원인이 되어 잘라낸 것이라는 설정이다. 애초에 장애라는 부분을 모에요소로 적용해 밀어붙이는 게임도 아니라 별 상관은 없다. 더구나 린 루트에서 린의 장애는 린 자신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냥 오렌지만 못 까먹을 뿐이지 멜빵바지도 입고, (위에 있는 이미지처럼)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있으며, 발이나 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본적이자 린에게 있어 일상적인 행동이다. 주인공 나카이 히사오에게 린이 자신의 장애를 불편해해서 도움을 뻗은 것은 단 두 번, 화실에 찾아온 히사오가 린이 까지 못하는 오렌지 껍질을 까줄 때와 뒤에 언급할 장면 뿐이다. 자신의 장애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것은 반신 화상과 그로 인한 피해장애를 얻은 하나코 루트밖에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하나코 루트는 우리가 상상했던 긍정적인 의미(?)의 '장애로 인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갈등이 펼쳐지는' 캐릭터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리뷰는 테즈카 린에 관한 이야기고, 린 루트는 딱히 별 상관이 없다. 정확히는, 린의 장애를 린 자신과 히사오는 상관없어 하고, 정작 린의 그림을 보러 온 이들이 그 사실에 주목할 뿐이다. 손이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니 같은 그런 진부한 질문들 말이다. 다행이 이 고양이를 닮은 소녀는 자신의 장애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부정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의문이 든다. 그럼 대체 뭐가 이야기의 소잰데? 

바로 린이 습관처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인 그림이다.



2. 추상화

린은 추상화를 그리는 것에 재능이 있다. 추상화에 대해서 소견이 넓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인 (리뷰를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서)플레이어는 아, 천재구나 하고 히사오나 주위 사람들의 언급으로 이해하게 된다. 화실에서의 첫 만남 이후, 히사오는 린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그림에 대해서 별 재능이 없던 그 또한 린을 따라 미술부에 들게 되지만 그저 재능이 없다는 것을 확인만 했을 뿐 더 이상 미술부 동아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닿기 어려운 소녀에게 빨려들어간다.


린과 히사오의 대화는 일반인인 히사오와 그렇지 않은 린의 맞닿지 않는 파문처럼 엉뚱한 곳에 팡하고 부딪힐 때가 많다. 애초에 린은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이미지를 끌어내기 제일 적합한 것이 그림이라고 말하는 캐릭터다. 당연히 그림이 아닌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는 쉽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벅차다. 그럼에도 히사오는 린을 '이해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그 이해하는 과정은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다. 되려 갈등의 번복으로 인해 지쳤다가, 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골치가 아팠다가, 그럼에도 린을 놓을 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히사오의 내면 묘사는 안쓰럽기 그지없다. 


다만 히사오는 린을 잘못 '이해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루트의 본격적인 갈등이 터진다.



3. 이름

린은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대로 자신이 멋대로 만든 틀에 박혀서 그림을 보게 된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린에게 있어서 히사오의 권유로 하게 된 전시전은 린 자신을 메마르고 소모하게 만드는 데에 아주 적합했다. 히사오 또한, 린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그게 에로게 히로인이라는 관점으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스스로 왜 그랬는지 자책하기도 한다. 작품을 준비할 때도, 아닐 때도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린은 히사오에게 화실에 가만히 앉아있어달라고 할 때도 있고, 혹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쫓아낼 때도 있다. 린을 이해할 수 없던 히사오는 거기서 말 그대로 뚜껑이 열린다.


그림이 더디게 진행되던 와중에 린에게 필요했던 자기파괴(원문은 Self-destruction)는 창작자에게 있어서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묘사된다. 잠을 걸러보기도 하고, 밥도 대충 챙겨먹기도 하고, 한 번도 피워보지 않던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며, 그 끝에는 첫 씬이 기다리고 있지만 에로스적인 느낌은 전혀 없이 슬프기만 하다. 이미 고백을 했다가 차인 히사오가 린의 자기파괴의 마지막 단계를 도와주려 내민 손은 남녀의 그것이라기보다, 손이 없는 린을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자기파괴가 성공적이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린의 그림은 린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을 묘사한 것이다. 심지어 린도 그걸 그리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안 붙이는 것도 있지만, 못 붙이는 것도 있는 것이다. 전시회가 성공적이건 어쩌건 애초에 그건 린에게 있어 관심 밖의 일이었고, 그림 좀 볼 줄 안다는 갤러리들이 작가인 린에게 묻는 질문들은 일반적인 화가라면 모를까, 린에겐 하등 도움도 되지 않고 설명도 할 수 없다. 애초에 자신도 모르는 내면을 그대로 그린 것인데 그걸 뭘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4. Can you seize the day?

히사오가 린의 내면을 살짝 엿본 것을 시작으로 린이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고 마음을 다잡는 과정은 다른 의미로 에로게의 의미에 맞다고 생각한다. 대다수가 어른인 플레이어도 린을 따라가기 벅찬데, 그 미만의 연령대는 아예 이해도 하지 못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린 루트는 야한 장면을 제외하고도 어른인 플레이어를 상정하고 엮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고, 린과 히사오의 맞닿지 않는 파문은 끝내 맞닿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새드 엔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맞닿지 않을 뿐, 뒤돌아보면 겹쳐질 때도 있다가, 흩어지기도 하다가 하기 때문이다.


에미 루트를 제외하고 모든 캐릭터 루트를 봤지만, 린 루트의 히사오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한 루트는 없는 것 같다. 린을 잡을 수는 없지만, 린이 필요한 거리를 히사오는 알고 있다. 그것을 존중하면서도 린을 사랑한다. 자기멋대로인 면도, 자신의 재능을 굳이 돈을 벌려고 쓰는 것도 아닌 면도, 갑작스레 찾아와서 머리 좀 말려달라고 하는 엉뚱한 면도, 전부 다. 린이 처음 그려준 우울한 자신이 담긴 스케치로 인해 히사오는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그간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린'을 보게 되었으니까.


일반인의 관점으로 보면 대단한 재능을 썩히는 비효율적인 애라고 비난하겠지만, 린에게 그런 얘기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린은 일반인이 아니고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자신이 보이는 것에 조금의 변화가 있을지언정 린은 또 다시 붓을 들것이다. 린의 그림에 있어 누군가의 인정이란 고려대상이 아니다.



5. 민들레

엔딩에서야 린 루트 돌입 시에 나오던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을 느끼는 대로 그리는 린, 하지만 캔버스 속 '린'은 네가 그리는 그림이 맞냐고 물어보듯 고개를 갸웃한다. 내면에 잠든 린을 깨우는 민들레 꽃씨. 히사오가 순간이지만 린의 안에 들어왔다가, 린이 눈을 뜨자 그대로 사라져버린다.


왜 민들레가 나오나 했더니 두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장치로 적용되었던 것이다. 민들레는 히사오가 린 자신도 모르는 내면을 접촉할 수 있게 해준 장치였고, 그걸 계기로 히사오는 린과 친구 이상의 관계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흩날리는 꽃씨 속, 히사오는 감히 린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듣게 된다. 린을 따라가기 벅찼던 이들은 린의 변화에 되려 벙찔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린이란 캐릭터가 할 것이라고 생각치도 못한 말을 내뱉으니까.


정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멋대로 튕겨대는, 로맨스로는 꽝이면서 매력적인 히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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